로고

상단메뉴

  • 회원가입
  • 로그인
차이야기
(submenu3_on.gif)

차이야기
언제부터 마셨나?
관리자 (pyfoodsroot) 작성일 : 2010-11-24 11:54:41 조회수 : 131
보이차 = 푸얼차(普 茶 Puerh Tea)

참고 : 보이차(普), 이자는 물가 수에 귀이자입니다.
 
- 중국차의 역사는 보이차의 역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
 

보이차의 역사는 기원전 1000년경 周나라 때 중국 중원 남쪽 지방의 8개 작은 종족들로 구성된 파촉(巴蜀)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이들 중 일부 족이 기원전400년 춘추 전국 시대에 접어들면서, 전란에 시달려 쪽으로 이동. 지금의 운남성, 귀주성, 호남성, 관서성 등 산중 오지로 집단 이주하였다. 이때 운남성으로 들어온 漢人들은 다시 여러 종족으로 갈라져 이들 소수 종족은 산 속에서 자기네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전통으로 모여 살게 되었다.
운남성은 차의 원산지로 야생 차나무가 세계적으로 제일 먼저 발견 된 곳이며, 현재에도 큰 야생 차나무들이 대량 보존되어 있는데도, 唐나라때 육우가 쓴 '다경'(茶經)에는 13개성(省)42개주(州)의 명차를 소개하면서도 보이차에 관한 내용이 없다. 그 이유는 기원전 221년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여 중앙집권제를 펼치지만. 지리적으로 오지인 운남성은 중앙정권의 행정 통솔력 밖에 있었기 때문에 야만인들이 마시는 저급품 차라고 생각하여 관심이 없었다.
이미 唐나라 때부터 있었던 보이차의 정식 이름에 관한 기록은 보일부(步日部)라는 지명의 음이 변해 보이부(普이部), 13세기(元 1281-1367)에 들어서 푸차(普茶), 17세기(明1368-1644)에 푸얼현에서 모아 출하하였기 때문에 푸얼차(普이茶)로 불리게 된다.
이름을 얻은 보이차는 티벳, 서장, 신강 등 육식을 위주로 하는 소수민족의 필수 식품이 되어 점차로 국내외에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明태조 주원장이 단차(團茶)를 폐지하고 산차(散茶)를 진흥 시켰지만 역시 오지인 이곳은 행정력이 미치지 못해 단병차(團餠茶)의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게 되었다.
唐宋이래 차마시장(茶馬)은 운남에서 시작하여 미얀마. 월남. 인도로 차의 길(茶馬大道)을 만든다. 靑왕조에 이르러서는 교통의 발달로 중앙 정부가 운남성의 모든 행정력을 장악하게 되어, 국내외뿐만 아니라, 공다(貢茶)로 인해 황실의 총애를 받는 최상품의 차로 인정받게 된다.

목록보기 답변하기 글쓰기
관리자모드

COPYRIGHT

(소재지) 충남 아산시 배방읍 장재리 1767 와이몰 D214호(KTX 천안아산역 앞)